알수 없어요...한용운
알 수 없어요
한 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만해(萬海) 한용운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유천(裕天)이다. 향리의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했으며 1896년 동학혁명에 가담한 후 유랑 끝에 설악산 오세암에 피신한 것을 인연으로 불가에 입문하였다. 1905년 백담사에서 운곡(運谷)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였다. 계명은 봉완(奉玩), 법명은 용운(龍雲), 법호는 만해(萬海)다.
1919년 3.1운동 당시 33인의 대표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 많은 인사들이 훼절하여 친일파로 전락하였으나 스님은 끝까지 지조를 지키며 독립운동과 불교계 혁신에 헌신하다 1944년 6월 29일 심우장에서 입적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이 서훈되었다.
시집 <님의 沈默>을 비롯하여 <조선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 <불교대전> <정선강의 채근담>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입문하기 전에 아들을 하나 낳았으며 이북에 살다 타계하고 세 명의 손자가 역시 이북에 살고 있고 말년에 성북동 자택에서 노후를 함께 해준 수녀님과의 사이에
따님이 한 분 계시며 생존해 계신다. 성북동 자택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출생지인홍성과, 득도하고 님의침묵<沈默>을 쓰신
백담사,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에 만해(萬海)기념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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